얼마전에 읽은 "다시, 책으로" 에 인상 깊은 내용을 발췌 기록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읽는 능력이 타고난 인간의 능력이 아닌 학습과 숙달에 의한 결과이며, 더이상 읽지 않는 인간의 '읽는 뇌' 의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읽지 않으면 잃어 버릴 수 있는 읽기 능력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담고 있어요.
첫 번째 편지 : 읽기, 정신의 카나리아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문해력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입니다. 읽기는 우리 인류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를 더했지요. 그와 더불어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읽는 뇌의 발달과 지금도 진화중인 반복회로의 가속화된 변화에는 인류의 많은 것이 걸려 있습니다. 문해기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바뀌는 전환은 그 전에 일어난 소통 형식의 전환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상이한 방식의 읽기가 인지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면, 우리는 아이들과 이후 세대의 읽기 회로가 보다 현명한 방식 혹은 보다 정보에 밝은 방식으로 형성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읽기에 관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순한 첫 번째 시실은 문해력이 문화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읽기에 필요한 신경회로를 발달시킬 유전적 프로그램이 없다는 뜻이지요. 읽는 뇌 회로가 형성되고 발달하는 과정에는 자연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이 모두 영향을 줍니다.
다양한 매체가 읽는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청소년은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가장 중요한 능력을 확실하게 지키기 위한 최선의 대비책입니다. 우리의 읽는 뇌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너무 깊이 각인되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우리 앞에 놓은 문제와 선택들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관심을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읽는 뇌는 우리 정신의 카나리아입니다. 그것이 경고하는 바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최악의 바보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탄광에 유독 가스가 누출되지 않는지 카나리아를 들여보내 점검했다. 이후 카나리아는 어떤 '징조'를 미리 알아보는 수단을 의미하게 되었다.)
두 번째 편지 : 커다란 서커스 천막 아래 - 읽는 뇌에 관한 색다른 관점
가장 놀라운 점은 뇌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기능들 (시각과 언어)을 넘어 읽기와 셈 같은 완전한 미지의 능력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뇌의 회로를 재활용해 새롭게 구성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유전적으로 계획되지 않았던 온갖 활동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결정된 읽기의 청사진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읽기가 타고난 것이어서 아이가 적정 시기에 이르면 언어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형태'로 발현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대다수는 이 비자연적인 문화적 발명의 기본 원리를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가소적인 읽는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함축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읽기 회로의 '엔진 안'으로 들어가 봐야 합니다. 단어 하나를 읽을 때마다 수천, 수만 개의 뉴런 작업군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셨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편지 : 위기에 처한 깊이 읽기
우리가 문장이나 텍스트에서 단어들을 읽을 때는 새로운 인지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이때는 예측이 지각과 만나지요. 사실 예측이 지각에 선행하고 미리 대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전향적' 예측이라고 부른 활동을 통해, 즉 일련의 단어들 다음에 우리가 무엇을 읽을지 가능성을 좁힘으로써 지각의 속도를 앞당기지요.
하지만 글이나 텍스트를 얼마나 잘 읽느냐는 우리가 깊이 읽기 과정에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깊이 읽기를 위한 뇌 회로 형성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문장을 '느낄 수 있는 생각'으로 개념화한 것은 깊이 읽기에서도 가장 실감이 나고 감각을 자극하는 과정을 설명해주는 좋은 징검다리라고 하겠습니다. 단어들로만 전달되는 일련의 감각적인 세부 묘사를 통해 여러분과 저자는 함께 이미지를 구축합니다. 우리가 텍스트의 기반인 여러 겹의 의미층으로 진입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이미지의 힘입니다.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한 혜택입니다. 읽기 안에서 이런 뜻밖의 만남이 일어나고 타인의 관점을 취하게 되는 것을 '옮겨가기'라고 불렀습니다. 읽기라는 행동은 인간이 자신으로부터 풀려나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일이 일어나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책들, 그리고 그 속에 거주하는 '친구들'의 삶과 감정들로 창조되는 수많은 세계에 우리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는 인지적 인내심을 서서히 잃어 간다면 결국 많은 것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의 생각과 느낌을 접하거나 이해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합니다. 소설을 읽는 것과 공감 및 마음 이론의 기반으로 알려진 인지 과정 사이에는 강한 관련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대한 공감 어린 이해를 통해 우리의 오만과 편견은 해소될 수 있습니다.
평생 우리가 읽는 모든 것은 지식의 저수지에 더해져서 우리가 읽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능력의 기반이 됩니다. 우리 내부의 배경 지식은 깊이 읽기를 안정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많아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지면서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쉬다는 말이지요.
읽기, 적어도 모든 깊이 읽기에는 유비적 사고와 추론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읽는 것의 다층적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지요. 알면 알 수록 우리는 더 많은 유추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유추를 사용해 더 많이 추론, 연역, 분석하고 우리의 이전 가정들을 평가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우리가 글을 읽을 때 경험하는 다양한 탐사 모드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텍스트에서 정보를 거둬들이고 최선의 사고와 느낌을 연결한 다음 비판적 결론을 도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엿볼 기회가 되어줄 인지적 공간으로 미지의 도양을 감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절정이 통찰입니다.
네 번째 편지 : 독자였던 우리는 어떻게 될까?
깊이 읽기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핵심적인 인간 능력에 시간을 할애하려면 주의의 질이 높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주의력을 일기 시작한 걸까요? 답이 '그렇다'라면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
오바마는 정보는 "힘을 주는 도구도 해방의 도구도 아닌 주의분산과 기분전환, 일종의 오락이 되었다"고 걱정했습니다. 정보가 계속 피상적인 수준에서 일종의 오락으로만 지각된다면 결국 우리는 표면에만 머무르게 되어 잠재적으로는 진정한 사고를 심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방해 받는다는 것입니다.
스크린으로 몇 시간에 걸쳐 읽을 경우에는 무의식중에 설정마저 디지털 기반의 읽기 쪽으로 발달됩니다. 이것을 '블리딩 오버' 효과라고 부르겠습니다.
읽기에서든 예술에서든 아름다움의 지각은, 통찰과 마찬가지로 깊이 읽기를 구성하는 것과 같은 능력에서 많이 나옵니다. 언어와 사고가 위축되고 복합서이 줄어들며 모든 것이 같아질 때, 우리의 사회정치는 큰 위협을 받게 됩니다. 결국 다른 것, 즉 '타자'라면 무엇이든 제거하는 방향으로 치닫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는 것은 쓰는 방식마저 바꿔놓습니다. 요즘 베스트셀러 소설은 문장에 사용된 구와 절의 수가 급감하면서 문장의 평균 길이가 20세기 초중반 작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말도 높은 텍스트의 어려운 문장 구조를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도 학생들은 점점 그런 시간과 노력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어려운 비판적, 분석적 사고를 견디는 인지적 인내심을 잃게 될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불충분한 정보에 노출되는데다 복합적인 지적 기술까지 사용하지 못한다면 젊은이들의 읽기와 쓰기 능력은 더욱 저하되고 결국 그들은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새로운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 읽습니다. 또한 이 세상을 뒤로한 채 저의 상상 너머, 저희 지식과 이생 경험 밖에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읽습니다.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들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다섯 번째 편지 : 디지털로 양육된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는 다른 조재가 되기 직적의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형성해가는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열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비티은 우리의 주의가 금세 다른 일로 옮겨가는 것을 새것 편향이라는 진화적 반사작용으로 해석합니다. 아이들이 주의를 빼앗는 일련의 자극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뇌가 사실상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에 내내 잠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합니다.
스크린 위에서 노는 것에 중독되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료함이라 부르는 상태를 헤쳐 나가는 법을 모를 것이다. 주의 결핍 증세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전전두엽의 억제 체계에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인쇄물로 읽느냐, 스크린으로 읽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독해력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읽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인쇄물이 나았습니다. 깊이 읽기와 인지 발달의 중심에는 심오한 인간적 능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아이들은 이미 아는 것을 토대로 새로운 정보를 비교하고 이해함으로써 개념적으로 더없이 풍부한 배경 지식을 구축하게 되지요.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질 때는 배경 지식을 구축하기가 더 여려워진다고 했지요. 우리가 지각하고 처리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입력되는 정보를 배경 지식에 연결 지을 시간이 줄어들고, 결국에는 깊이 읽기의 나머지 과정이 가동될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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